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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봉제공장 시다, 삼성 입성기
    Writer/Technical Book 2009. 3. 21. 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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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제공장 시다, 삼성 입성기 본문보기
    권세종| 행복한책가게| 2005.07.01 | 251p | ISBN : 8970634738
    평점 9.18 17 참여| 네티즌리뷰 12건 도서관 소장정보 : 국립중앙도서관 | 국회도서관 가격 9,500원 → 최저가 7,120| eBook 3,800원 ebook 구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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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소개
    봉제공장 시다가 학벌의 한계를 딛고 삼성맨이 되기까지, 권세종이 보여주는 인간승리의 새로운 버전
    정식 학력이라고는 초등학교 졸업장이 전부인 한 청년이 삼성에 입사하기까지, 아직도 계속되고 있는 그의 도전을 담은 책이 열림원의 자회사 행복한책가게에서 출간되었다.
    세 돌이 되기 전 교통사고로 부모님을 한꺼번에 여의고 할머니 밑에서 말 그대로 ‘배가 고파 죽을 지경’의 가난한 시절을 보냈다. 학업을 계속하기 위해 새벽부터 신문을 돌리고 장학금을 받기 위해 운동특기생이 되기도 했지만 더 이상 어떻게 해볼 수 없는 막다른 상황에 이르자 혈혈단신 상경한다. 그때 그의 나이 열네 살. 한참 부모의 보호를 받으며 공부를 해야 할 나이에 그는 홀로 세상으로 나가야 했다.

    철인 3종 경기의 시절
    서울에 올라와 처음 시작한 일은 봉제공장 시다였다. 무릎을 꺾이게 하는 원단의 무게를 눈물을 삼키며 견뎠다. 봉제공장 생활이 익숙해질 무렵 신문배달을 다시 시작했다. 한 푼이라도 더 벌기 위해서였다. 그러던 어느 날 새벽, 운명 같은 전단지 하나를 발견한다. “배움의 고통은 잠시이지만 못 배운 고통은 영원하다.” “수업료 전액 면제”, 배우고 싶어도 방법이 없었던 그에게 환한 빛 한 줄기가 자신을 비추는 것 같았다. 그날로 그는 ‘상록야학’ 학생이 되었다. 새벽에는 신문배달부로 낮에는 봉제공장 시다로 밤에는 야학 학생으로 하루 서너 시간을 자면서 철인 3종 경기를 방불케 하는 인간 한계에 도전하는 날들을 보냈다.

    컴퓨터로 세상과 통하다
    봉제공장에서 인생을 마감할 수 없다는 생각에 대학 입시를 준비하여 경희대학교 지리학과에 합격했다. 컴퓨터의 ‘컴’자도 모르는 컴맹이었지만 ‘삼정데이터시스템’이라는 IT 회사에 사환으로 입사하여 컴퓨터에 미쳐 5년여를 보내자 달랑 초등학교 졸업장이 정식 학력의 전부인 그도 국내 굴지의 대기업 삼성에 입사할 수 있었다. 그때 그의 나이 25살이었다.

    이 책이 우리에게 주는 가치들
    봉제공장 시다에서 IT 회사의 사환으로 그리고 삼성SDS의 공채 직원이 되기까지 그가 보낸 세월은 한 편의 드라마와 같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해발 1,500미터의 정상을 오르기 위해 버스를 타고 가다 500미터 지점에서 등반을 시작한다면 그는 저 아래 제로(zero) 지점에서 인생의 등반을 시작했다. 다른 사람들에 비해 분명히 불리한 조건이었지만 그는 그 조건을 탓하지 않고 자신이 가진 단 하나의 무기, 성실이라는 무기로 정상에 올랐다. 성실의 가치가 경시되고 부익부 빈익빈이 더욱 극대화 되는 현실에서 그가 보여준 일련의 모습들을 통해 우리는 ‘나도 할 수 있다.’는 생의 중요한 가치를 배우게 된다.

    불우한 환경이 좌절의 이유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온몸으로 보여주었다.
    먹을 것이 없어 친구에게 돈 100원을 빌려 큰솥에 물을 한가득 붓고 파를 한 단이나 넣어 곰탕처럼 끓여서 누나와 나누어 먹었던 ‘곰탕라면’, 파를 얼마나 많이 넣었던지 뚜껑을 열자 매운 연기가 피어올랐다. 라면을 먹으면서 매워서 울고 배가 고파서 울었다. 봉제공장 시다 시절 3일을 꼬박 한 숨도 자지 못하고 철야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엎어져 잠들려 할 때 사장이 득달같이 달려와 “이 새끼가 지금 누구 망하는 꼴 보려고 이래? 당장 안 나와.”하며 돌아가신 부모님까지 들먹이며 상욕을 퍼부을 때 눈물을 삼키며 이를 악물었다. “윈도우도 모르는 놈에게 무슨 일을 가르칩니까?”라며 마우스를 집어던지는 상사 앞에서 반드시 컴퓨터로 그를 이겨 보리라 다짐하기도 했다.
    가난하고 배고픈 시절 나쁜 길로 빠져 불량 학생이 될 수도 있었고 처음 발을 들여놓은 봉제공장에서 그냥저냥 살아갈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불우한 처지에 놓여 있다고 해서 조건이 좋은 사람들과 같은 성공과 행복을 누릴 수 없다는 생각을 해보지 않았다. 대신에 조건이 불리하다면 다른 사람들보다 두 배 세 배로 더 노력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는 처절하게 노력했고 노력의 결과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고 도전도 해보기 전에 먼저 체념하는 수많은 젊은이들에게 이런 그의 모습은 자신을 돌아보고 반성하게 하는 하나의 귀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무슨 일에든 최선을 다하면 못 이룰 일이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처음 검정고시를 준비할 때 아무리 노력해도 수학 성적이 오르지 않자 10년 치 검정고시 수학 문제집을 모두 사서 문제 경향을 분석했다. 그렇게 해서 자신만의 문제집을 만들기도 했는데 대학노트 3권의 분량이었다. 그는 그 시험에서 수학 문제를 단 두 개밖에 틀리지 않는 성과를 이루어냈다. 컴퓨터 자격증을 따겠다는 마음을 먹고 난 후 그는 매년 2개 이상의 자격증을 취득하고 있다. 어려워 도저히 합격할 수 없을 것 같은 시험은 아예 명령어를 통째로 외워버렸다. 어떤 시험에서는 문제도 보지 않고 외운 명령어를 한 시간 동안 써내려가자 이를 보고 있던 감독관이 “내가 오랫동안 시험 감독을 해봤지만 당신 같은 사람은 처음 본다.”며 혀를 내두르기도 했다. 그렇게 해서 현재 9개의 자격증을 취득했고 그 중 국제공인자격증만 8개이다. 인라인 스케이트를 시작하고 1년 만에 인라인 스케이트 업체의 세미프로 선수로 스카우트 되기도 했다. 팔이 부러져 깁스를 하고도 대회에 출전했으며 <제 1회 문화일보 스피드웨이 인라인 레이싱 대회> 일반 부문 1위를 했고, <제 1회 MBC ESPN 인라인 스케이트 마라톤 최강전>에서는 뒤 따라 오던 선수에게 발이 걸려 넘어졌어도 결국 8위를 차지하는 괴력을 보여주기도 했다.
    무수히 많았던 그의 관행을 깨는 사고와 행동은 그 일에 온전히 미친 사람만이 보여줄 수 있는 모습이었다. 그 일에 미쳐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능력을 다 쏟아 붓고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한다면 못 이룰 것이 없다는 것을 말이 아닌 몸으로 보여주었다.
    어려웠던 과거에서 힘을 얻고 그 힘으로 세상과 더불어 나누며 사는 아름다운 청년의 모습을 보여준다.
    처음 삼성SDS에 자기소개서를 제출할 때 그는 IT 이력과 무관한 봉제공장 이력을 자세히 기술했고 삼성 SDS에 입사한 후 유학파와 석·학사 출신이 즐비한 속에서도 공장 시다 출신이라는 자신의 이력을 숨기지 않았다. 노래방에 가면 다른 사람들이 강산에의 ‘거꾸로 강을 거슬러 오르는 저 힘찬 연어들처럼’을 부를 때 봉제공장에서 배운 ‘네 박자 인생’을 불렀다. 부유한 가정에서 좋은 교육 받은 사람들과 어우러져, 그들이 가진 장점을 질투하기보다는 그들에게 비춰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을 인정할 줄 알고 그들에게는 없는 자신의 장점을 살릴 줄 알았다. 또 야학 컴퓨터 선생님이 되어 그동안 야학에서 받은 많은 것들을 야학 학생들에게 나누어주기도 했다. 그는 소년원에 컴퓨터 강의를 나가기도 한다. 법원에서 주최하는 이 교육에서 그는 자신의 불우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컴퓨터 교육은 물론 아이들의 상처받은 마음을 어루만져주기도 한다. 또한 자신의 이야기를 글로 엮은 이 책의 인세 일부를 ‘삼성시회봉사단’에 기부하여 어려운 이웃들과 함께 나누기도 했다. [인터파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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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 소개
    저자 | 권세종
    권세종 1976년 경북 영주에서 태어났다. 세 돌이 되기 전 교통사고로 부모님을 여의고 누나와 함께 할머니의 손에서 자랐다. 늘 배가 고팠던 그는 중학교 1학년 때 무작정 상경, 봉제공장 시다 생활을 시작했다. 1992년 ‘미치도록’ 공부가 하고 싶어 ‘상록야학’에 들어갔고 새벽에는 신문배달부로, 낮에는 봉제공장 시다로, 밤에는 야학 학생으로 철인 3종 경기를 방불케 하는 1인 3역의 고달픈 나날을 보냈다. 허리 한번 제대 펴지 못하고 번 돈으로 할머니와 누나를 부양했고 이를 악물고 공부한 결과, 중·고등학교 검정고시에 차례로 합격하고 경희대학교에도 입학했다. 1997년에는 서울시가 주는 ‘효행·예절 청년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1995년 ‘삼정데이터시스템’에 입사하여 5여 년 동안 컴퓨터 공부에 매진, 2000년 한국경제TV를 거쳐 삼성SDS에 입사했다. 삼성 입사 후에도 그의 도전은 멈추지 않았다. 그는 특유의 끈기와 노력으로 학벌의 한계를 딛고 9개가 넘는 국제공인자격증을 취득하여 자격증 수로는 삼성SDS 톱 10 안에 들게 되었다. 현재 삼성SDS 웹마스터라는 공식 직함 외에 삼성멀티캠퍼스(E-CAMPUS) IT 강사로도 활동 중이며 소년원, 공무원교육원, 기타 국내외 여러 학교 및 기업체 등에서 동기부여·의식개혁·자기개발 등의 특강 강사로도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인터파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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